2024. 11. 22. 10:49

 

826일 개이고 더웁다.

 

 

연박 가서 씨의 果園 구경하고 아이들 데리고 비루박달로 고기 잡으러 갔더니 고기는 어제 제천 사람들이 약을 풀어서 다 잡아버렸으므로 없다기에 金漢九 씨 댁과 朴遯緖 씨 댁에 놀다 왔다.

 

이중연 씨 오후 6시 차로 출발.

 

조선은 미-소 양군이 점령한다는 京日의 뉴스. 분할하는 일이나 없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마음속에 빌건만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曺必煥 씨 방에서 레코드를 듣노라니 早坂 씨의 어린 딸들이 와서 듣는 양이, 그리 보아서 그런지 맥이 없어 보이고 한동안 푸르던 서슬에 비기어 어쩐지 눈물겨워 보여 이도 한 感傷일까.

 

 

 

827일 더웁고 개이다.

 

 

면에 갔더니 韓弼洙 씨가 어제 경성일보에 조선은 카이로선언에 의해서 자유독립을 준다는 자유라는 문구가 걱정되어서 밤새도록 생각해냈다는 의견이 하도 어이가 없어. 그의 말에 의하면 조선은 독립해도 좋고 아니해도 좋으며 미국에 붙어도 좋고 소련에 붙어도 좋고 또 일본에 붙어도 自由라는 의미인데 그렇게 되면 일본은 경제적으로 많은 지반을 가졌고 기술적으로 우위이니 일본에 붙기가 쉬울 것이며 京日의 기사를 보더라도 재류 일본인은 귀환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며 또 부산의 일본인이 共榮會를 만들었다는 會名으로 보아서 일본인이 조선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명백하고 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니 이것 큰일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사실은 어리석으면서도 제잘난 체하는 축들이 이 설명에 대해서 그렇고말고 하며 感歎不已하는 양은 더욱 한심스러운 노릇이었다.

 

한 씨는 이미 이 당당한 所論을 발표하려고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또 장문의 원고까지 쓰는 중이었으므로 여러 말 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 치 않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서 “free and independent”라는 문구는 자유독립이라는 뜻일지니 그리 걱정할 것이 못 되며 또 일본에 붙게 되리라는 杞憂는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 미-영이 무엇보다도 주력하는 점은 일본이 다시 그네들에게 보복하지 못하게 함에 있나니 그리함에는 첫째 일본과 대륙을 갈라놓지 않을 수 없을지라 일본인이 아무리 조선을 놓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될 수 없는 일이며 요사이 京日의 기사는 소위 wishful thinking에서 나온 것이 많고 더욱이 필승의 신념을 견지했던 그네들이 불의에 하늘이 무너져서 아직도 정신이 얼떨떨한 김에 최후의 발악을 함일지니 거기 개의할 것 없다고 일러주었다.

 

또 한 가지 한 씨의 의견에 의하면 봉양면 치안유지회는 아직도 사상적으로 백지인데 여기 어떠한 다른 사상이 물들게 되면 큰일이니 우리가 곧 사상운동을 강력적으로 전개시켜서, 즉 이 백지에다 미리 물을 들여서 다른 사상이 들어올 것을 미연에 막고 언제 일어날는지 모르는 異端 사상운동을 강력적으로 쳐부수기 위해서 청년층을 망라해서 일대 사상운동을 일으키자, 독일의 히틀러며 이태리의 무쏠리니도 다 조그만 시골구석에서 몇몇 동지와 손을 잡고 청년층을 움직여서 마침내 조국을 재건하고 세계를 뒤흔들기에 이르렀으니 우리도 해서 안 될 것이 무엇이냐 앞날의 사태에 해서 족이 해야겠다는 卓見.

 

그냥두면 어떠한 망동에 나갈는지 몰라서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 씨 중심의 이네들에겐 사상운동을 일으킬 확호한 이념이 없다고 나는 본다. 이념이 빈약한 사상단체란 폭력단에 떨어지지 않을까. (이건 말하지 않았다.)

 

사상운동이란 下野해서 할 일이지, 면민의 치안을 확보하고 식량 배급 기타 임시적이나마 행정권을 가진 치안유지회가 별동대 형식으로 사상운동을 일으키는 건 부당하다. 그것은 결국 독재, 전제를 초래하고야 말 것이다.

 

백지니까 우리가 먼저 물을 들여 두자는 건 더욱 안 될 말이다. 잘못하면 대립되는 사상운동을 격화시켜서 심각한 투쟁을 야기하기에 이를 것이다.

 

히틀러, 무쏠리니는 우리의 배울 바가 아니다. 설사 그네들의 과오를 置之勿問하고 그 일시적인 성공을 본받을 일이라 친다더라도 같은 경우의 프랑코는 조국 스페인을 비참한 내란에 몰아넣지 않았느냐. 만일 히틀러, 무쏠리니를 본받으려다 잘못해서 프랑코의 지경에 이르르면 어찌하느냐.

 

이 문제에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은 언젠가 한 씨가 치안유지회가 새로 발족하던 날에 우리는 앞으로 이 회를 잘 육성시켜 나가서 차츰 隣面을 흡수하고 隣郡을 합병해서 큰 덩어리를 이룩하자 그리해서 신 정부가 탄생하더라도 우리의 의사에 맞지 않거든 우리는 독립해 나가자 하는 말을 해서 설사 일시적인 경솔한 발언이라 하더라도 해괴망측한 말이라 여겨졌으나 오히려 흘려들었더니 오늘날 그가 사유하고 그리고 곧 행동에 옮기려는 몇 가지로 미루어보면 그와는 도저히 함께 일해나갈 수 없음을 느꼈다.

 

오후엔 보례의 徐丙武 씨가 술 먹으러 오라고 청했으므로 면에서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것을 머리 아프다 핑계하고 보례로 갔더니 식량영단의 李宅相 金璋洙來座, 송추골 윤 씨도 왔었다. 김 씨의 말이 여운형 씨가 정무총감에게서 치안을 맡았다가 잘 되지 않아서 다시 총독부에 돌려주었으므로 유지들에게 힐난을 받았다고 하므로 나는 그 이면의 사정을 전연 모르므로 무어라 단언키 어려우나 내 짐작으로 여 씨도 남아이니 일이 잘 안 되면 배를 가르고 죽을지언정 맡을 일을 다시 갖다바치지는 않았으리라.

 

이번 일은 15-16일에 총독부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당황했던 것이 전후 사태의 추이를 보아서 명백한 사실이니 엉겁결에 내어 맡겼다가 차츰 보아가니 그럴 일이 아니라 되어서 다시 빼앗아 가지려고 했던 것이며 더욱이 연합군 측에서 아직까지도 너희들이 치안을 맡아보라는 삐라를 돌렸으므로 갑자기 건국준비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총칼을 휘두르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건 京日의 태도로 보아서도 짐작되는 것이 언젠가는 부위원장 안재홍 씨의 방송을 게재하더니 그 이튿날은 또 그 내용이 불온하다고 당국에서 엄중한 경고를 발했다 운운 하고 이내 해산에 이른 것이다.

 

[봉양면에도 16일 오후 경성 차가 오기 전에 兵事 기타의 기밀서류를 전부 불살라 버리라는 긴급 지시가 있었으므로 면에서도 그날 연합국군이 지방에까지 진주하는 것으로만 믿었다고 그날 밤 회의에서 면장이 말하였다.]

 

경성 시내에서 태극기를 휘두른 학생을 가두에서 총살했다는 소문으로 보든지 또 이 며칠동안의 京日을 통해서의 군의 위협으로 보든지 그들의 최후의 발악이 이러하니 여 씨 운운의 사실도 낭설일 것을 나는 확신한다.

 

徐岳影 군의 진지한 태도엔 경복한다. 그에게서 The Sketch-Book Youth and Sex 를 빌려왔다.

 

'해방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 8. 25  (1) 2024.11.21
45. 8. 24  (0) 2024.11.18
45. 8. 23  (1) 2024.11.13
45. 8. 22  (0) 2024.11.09
45. 8. 21  (1) 2024.11.07
Posted by 문천
2024. 11. 21. 18:40

 

 

825일 개이고 더웁다. [오늘부터 바람이 선선하고 宛然生涼한 듯]

 

 

이중연 씨가 매일신보를 가져와서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내용을 처음으로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밤에는 열여드레 달 밝기를 기다려서 윤태원 씨의 바깥뜰에 장평리 1-2구 사람들을 모아놓고 치안유지회의 일원으로써 한 시간 동안 강연하였다. 요지는

 

너무 기뻐서 흥분하지 말고 오늘서부터 곧 실력을 길러서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를 만들 일

 

사사로운 감정을 격발시켜서 동포들끼리 서로 티각태각하는 일 없이 삼천만의 최후의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낙오자가 없도록 할 일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 생각해 보라. 우리들 모두 얼굴이 뜨뜻할 과거를 지니지 않았는가. 오십보이소백보로 대일 협력자를 탄하지 말고 잘 타이르고 북돋워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모두 훌륭한 국민이 되도록 하자.]

 

大國民襟度로 일본국민에 대할 것 [대국민의 금도. 일본이 여기서 집권했을 때는 모두 그 앞에 가서 허리를 굽신거리다가 이제 패전국민이 되어서 퇴각하는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일이다. 모든 과거의 잘못은 물에 흘려버리고 따뜻한 마음씨로 그네를 보내자. 보따리 둘러메고 물러가는 그들이 아니냐.]

 

유언비어에 귀를 기울이지 말 일

 

식량 사정을 달관(?)해서 이 어려운 端境期(?) 웃으며 지날 일

 

부락치안대를 조직해서 우리들의 마을은 우리들의 손으로 고이 지켜 신정부에 넘길 일

 

내일부터라도 곧 야학을 열어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 딸들이 머리를 맞대이고 함께 가갸거겨를 익혀서 세계의 문명국민이 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할 일

 

일본에 가 있는 조선사람은 5백만(봉양 전 면민의 5백 배)이나 되어서 수송관계상 모두 한꺼번에 속히 올 수는 없는 일이니 아들, 조카를 일본에 병정으로 혹은 징용으로 보낸 이들은 너무 조급하게 기다리지 말고 더욱이 날마다 정거장에 나가서 하마나하마나 하고 애태우지 말 일

 

40년의 근심걱정을 다 털어버리고 가슴에 벅찬 희망을 안고 살아나가자. 앞으로는 삼천만 동포가 600만 석의 쌀을 먹게 되니 떡을 해먹어도 좋고 술을 빚어먹어도 좋을 것이다.

 

'해방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45. 8. 26-27  (0) 2024.11.22
45. 8. 24  (0) 2024.11.18
45. 8. 23  (1) 2024.11.13
45. 8. 22  (0) 2024.11.09
45. 8. 21  (1) 2024.11.07
Posted by 문천
2024. 11. 18. 17:40

 

824일 개이고 더웁다.

 

 

<초당>의 인용문 隣國相望 鷄狗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를 칮으려고 노자 도덕경을 들추다가 내가 학병 문제 때 마음의 한쪽 기둥이 되었던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也, 天地尙不能久而况於人乎를 보고 감개무량하였다.

 

치안유지회엔 아침에 잠시 나갔다. 부락 강연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있었으나 무좀으로 보행이 곤란하다고 辭避하였다.

 

낮에는 早坂 씨가 찾아와서 그네들의 鬱勃한 심지의 일단을 토로하고 자꾸 눈물이 쏟아질 듯 울먹울먹하므로 응대에 난처하였다.

 

오후의 신문에는 미국군 東京灣 進駐.

 

 

'해방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45. 8. 26-27  (0) 2024.11.22
45. 8. 25  (1) 2024.11.21
45. 8. 23  (1) 2024.11.13
45. 8. 22  (0) 2024.11.09
45. 8. 21  (1) 2024.11.07
Posted by 문천